2016/08/27

저출산의 시작은 어디서 부터 일까?

  산업혁명 이후 공장을 위해 노동 인력의 확충이 절실했다. 그 당시 영국에서는 극심한 노동력 부족으로 10세 미만의 어린아이가 극한의 작업 환경에서 하루 16시간 이상씩 근무하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한 어린아이의 노동력 조차도 부족하여 결국에는 여성에게로 사업주들은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거창한 이름의 "여성해방"으로 말이다. 1800년대 말까지만 해도 여성에게 뭔가의 결정권을 준 다는 것은 무모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생각이 짧고 무식하여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간주되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나기 전인 1918년에 결혼한 여자에게 참정권이 주워졌다. 정확하게는 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떤일이 벌어 졌을까?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고 경제권이 확충되면서 자연히 사회적인 목소리 또한 커졌다. 그들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던 자상한 엄마에서 산업혁명의 일꾼으로 거듭났고 회사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노동력이 되었다. 비록 남자들에 비해 절대적인 숫자는 적었지만 사회적인 변화를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투표권을 얻어낸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힘을 가지게 되었고 10년 뒤인 1928년엔 미혼여성 또한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빠르게 변화하는건 노동계 뿐만이 아니었다. 직장을 찾아 밖으로 나간 엄마들의 자리엔 커다란 공백이 생겼고 탁아시설들이 그 대책으로 논의 되었다. 하지만 변화는 빠르고 대책은 느린 법이다. 결국 경제력이라는 달콤한 사탕에 가정과 아이들의 교육을 넘긴 꼴이 되었다. 

 처음 여성이 경제권을 가졌을 때는 순간적인 경제력 증가로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었을 지 모르지만,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서 사회 구조는 맞벌이에 적응(맞벌이 가정을 타겟으로하는 차별화된 서비스,재화가 보다 높은 가격에 제공되기 시작했다)하게 되었고 아이러니컬하게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다. 문화 생활을 포함한 생활 수준이 한번 상승된 이후로는 뒤로 가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이런 악순환 끝에 출산과 육아는 힘겨운 짐처럼 인식되었고, 결국 출산 대신 여유로운 생활을 선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가족해체에 의한 강제력의 부재 또한 한 몫을 했다. 결국 현재 상태로 사회가 발전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인구는 줄어들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태어나는 아이들은 우리들 보다 힘겨운 상황에서 보다 많은 부양가족(세금으로 전가될 것이다)을 먹여 살려 나가면서 일에 치어 모든걸 포기하고 단순한 삶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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